퇴근시간이 지났지만 한 두 시간 정도만 더 하면 마무리 될 듯한 일거리가 남아있어서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홀가분하게 퇴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무실에 잠시 남아서 잔업을 처리 중에 있었다. 이미 퇴근시간이 두 시간쯤 지난 시간이었을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실장 책상 위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혹시 급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당겨 받았다.

"나 XXX본부장인데요…"

이렇게 시작하는 수화기 저편에서는 우리 부서와 연관이 있는 경영관련 자료를 뽑아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사실 언급된 그 자료는 직원이라면 누구나 이용하는 업무시스템에 로그인만 하면 뽑아낼 수 있는 자료였다. 다만 요구한 그 자료는 워낙 많은 양의 자료를 한꺼번에 뽑는 내용이라서 뽑아내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자료였고, 4천행 이상의 엑셀 시트가 두 개 정도는 되는 분량의 자료가 DBF 파일 형식으로 나오는 것이라서 엑셀로 읽으면 약간은 서식을 손봐야 하는 불편함이 조금 존재하는 귀찮은 자료이긴 하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네가 뽑으세요~"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여 그러겠노라고 일단 통화를 마친 후에 업무시스템을 이용해서 두 시간쯤 걸려서 정리한 자료를 메일로 발송을 해놓고 다시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는데, 이 양반이 받지를 않는다.

'설마, 일 시켜놓고 자기는 퇴근을?!'

이러저러한 확인 겸 해서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더니 주변에 들리는 소리로 봐서는 어디 외부에서 식사라도 하고 있는 모양. 응답하는 내용이 가관이다.

"아,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에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 ??... !!)"

일순간 당했다는 생각에 뒤통수가 얼얼하다. 그럼 뭐냐. 업무시간도 아닌 시간에 딸랑 전화 한 통으로 일을 시켜놓고 자신은 자기 편할 대로 퇴근해서 내일 출근 후에나 자료 살펴보겠다는 얘기 아닌가!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런 전화라는걸 알았다면 받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받지 말아야 했을 그런 전화를 절대 받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만약 다시 한번 이런 전화를 받았다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일까? 아니, 그 전에 이런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일을 해주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네, 말씀하신 자료는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시간 관계상 긴급 사항이 아니시라면 내일 오전 중에 작성해서 보내드리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괜찮으신지요?"

곰곰이 생각한 후에 나름대로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이 응대 내용으로 만약 답변을 했다면 그 본부장은 과연 상황을 납득하고 동의를 했을까? 어쩌면, 어차피 내일 아침에 봐도 될 자료라면 퇴근시간 이후에 전화를 걸어서 자료 내놓으라고 할 정도로 별로 생각 없는 사람이라면 적반하장 격으로 괘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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